부모님 연애시절의 덕수궁이랍니다. 그러니 60년대 말일 것 같아요... 제가 덕수궁 사진 찍는 이유가... 뭐... 이런것 때문에 끌렸던게 아닐까요? ^^ㅋ 우...핑계 좋다.. 밑에 동그라미 친곳이 제가 찍었던곳... 그렇게 생각하니 우습네요. 시간상 같이 있지는 않았지만 부모님과 전 같은 곳을 걷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왔다는게...;;;
아래 사진은 컬러였다면... 이게 60년대인지 전혀 모를것 같네요... 후... 시간이 뭔지...또 공간은 뭔지...
용산구... 근현대의 아픔과 분단이 그대로 집약되어 있는곳 같은...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니 나라고 역사에서 그닥 많이 비껴나지 않은 세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아버님과 아버지의 아버지가 태어난... 그리고, 나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가 태어난곳...
아버지의 아버지는 원래 서울에 시내에 계시다가, 그 당시만해도 시 외곽이였던, 용산 미군기지 부지 어딘가로 나오셔서 사셨단다... 원래 일본군대가 있었겠지요? 나의 아버지는 그후 그곳 태어나셨지만, (아마 군부대 확장??) 뭐 그런것으로 그 바로 옆인 동빙고동으로 이사 오셨다고 한다... 이전에 말했던 사진의 집터가 그곳이란다. 6.25 때 불타고 다시 지은 집이 바로 내가 어려서 태어난곳....(episod2에 보면 있다.)
"왜 그 집을 팔았어요?" 어머님의 답변은 간단하셨다... "너희들이 화장실 무서워서 못가서..."... ㅡㅡ;;
기억 안나지만, 화장실은 물론 퍼세식...이었다. 가끔 외부로 나 있는 그 화장실 구멍으로 개들이 빠져 죽기도 했었으니.... 최근에 가보니... 아직 그 흔적들이 있다... 물론 사용은 안하는 듯 하지만...^^ㅋ
가끔 빠진 강아지 끌어올리는것 구경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약간 아찔...ㅡ_ㅡ; "왜 냐구요?"... 강아지가 나와서 몸 흔들어봐...ㅜㅜ;; 하여간...
아버지와 얘기하다보니, 지난번 내가 봤던 서빙고나루라는 푯말의 위치가 잘못 되었더군요. 역시 걍 눈가리고 아웅...
지금은 반포대굑 북단 건너편 바로 밑에 걸려 있더군요.. 아버님 말씀에 의하면... 이것 보다 더 서쪽에 있었다고 하십니다. '주성동'쪽에요...
옛날 사진만 봐서는 전혀 위치를 잡기는 힘들죠. 하여간 그 당시 마포나루터가 젤 컷고... 용산 근처에는 한남동쪽 나룻터가 컷다고 하네요. 서빙고 나루터는 그야말로 작은 선착장 정도였던거 같아요.
자~ 서울 시내의 아가씨들이 야외 나들이를 위해 당시 서울 외곽이던 동빙고를 방문하셨습니다... ^^ㅋ 지금도 있는 동빙고 앞 철길을 건너셔서...
나루터로 내려갑니다. 아래 있는 곳이 서빙고 나루터... 뒤쪽으로 보이는 곳이 반포라죠? 모래밭이 쫘악 펼쳐져 있고... 그곳을 지나면 논 밭이였답니다.
나룻배에서 보이는 강건너 벌판...
그리고 강건너에서 보이는 강북의 모습... 왼쪽 제가 동그라미 쳐 놓은 곳이 현재 오산 중,고등학교라고 하십니다. 주성동이겠죠?
위 나루터의 사진들은 아버지가 찍으신 사진입니다... 마지막으로 두 분이 강 건너 놀러오시던 곳이라는 군요..
불과 몇십년만에 비대해진 서울... 굳이 동빙고와 나룻배자리를 보여주시겠다고 나서시는 아버지를 따라... 지금은 영화에나 나올듯 둔탁하고 어스름한 강북강변의 밑을 걷고 또 걷다가... 감기가 ...ㅠㅠ;; 이미 서빙고 나루터의 추억과 흔적은 차갑고 침침한 콘크리트 서울 아래 잠겨버린듯 합니다. 저희가 못찾은 것일까요?
요즘 우연치 않게 옛서울 이야기를 하게되는 군요.... 저의 옛날집과...옛날 동네입니다...
길은 그대로인데... 정말 바뀌어도 너무 많이 ㅜㅜ;;
집 앞입니다. 대문...
아래는 형의 사진인데... 집앞에 밭이 있었죠...
이곳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 옛날 문이 있던, 제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 있던 장소 입니다. ㅠㅠ; 바로 옆에 집이 큰고모님 댁이죠... 그 당시 큰고모님 댁과 저희 집은 우물이 있는 뒷들에 계단을 놓아 연결해 놓았었습니다. 아쉽네요... 그집이 그대로 있었으면....;;; 무슨 이유가 있으셨을까? 한 번 물어봐야 겠어요.
집안으로 들어가면 마당이 있고...
또 다른 마당 앞 할머니 사진입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
집 근처라면 아마 뒤에 보이는 것이 무슨 다리 일까요...
이곳은 형과 제가 입학하게 된 서빙고 국민학교 입니다. 이젠 초등학교로 부르죠?
이... 사진은 외할머님댁 옥상이라고 하네요.. 형사진입니다. 외할머님 댁은 약수동 어디셨었던듯
와 옛날 사진을 찾아 보아도 그렇게 많지가 않군요... 우리의 사진이란게 이렇게 대중에게 가까워진게 얼마 안되었다니...
한가지 기억에 남는 장소인데.. 저희 큰고모가 미용실을 했던 곳 같아요... 한 번 고모한테 물어봐야겠습니다.
밴드오브 브라더스라는 영화를 서너번은 본것 같습니다. 실감나는 그 장면들을 몇 번이나 보았는데... 그 영화를 고증한 전쟁사학자가 자신의 저서 'D-day'에 이 사진을 통해 기술해 놓았다고 이 책의 후반에 적혀 있습니다.
"이 남자는 일본군으로 징집되었다. 1939년 만주 국경 분쟁 당시 소련군에 붙잡혀 붉은 군대에 편입되었다.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대서양 방어선을 건설하는 데 강제 투입되었다. 포로로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 노르망디의 조선인... 얼마나 기구한 운명일까... 아직까지도 그 사람의 마지막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약소 국가 민족의 슬픔... 그 안에서도 없는자들의 서러움은 더 했겠죠.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 독일군으로 포로가 된 동양인의 사진에서 모든 궁금증과 이야기들은 출발했습니다. 2005년 12월(?) SBS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사람의 이야기를 추적해 나갔고, 조정래 작가님은 이 사진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토대로 '오 하느님'이라는 소설을 쓰셨다고 합니다.
아직도... 이 사람의 사진은 인터넷 곳곳에 소리 없이 남아 있죠. 어딘가에는 일본인으로... 어느 사이트에서는 알 수 없는 동양인으로...
우리 생이 다 하는 날까지, 우리의 운명이란 녀석은 뭔가를 꾸미고 있겠죠... 나라가 강해지고, 그래서 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강한 국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진을 보신 후, 한 번 읽어보세요. 기구한 그의 운명과 식민지 시대 우리 민족의 아픔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이 이게 뭐야... 한 숨짓다가 이 책을 보며 "열심히 살자!!"라고 힘이 솟는듯 하더군요.
날씨는 좀 흐렸지만, 따뜻한 날씨에 풀밭으로 나가봤습니다. 어느새 완연한 봄이 되어 있군요. 사진을 찍고 나서는...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보았던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잔디가 자라는 소리
아일랜드인들은 '잔디가 자라는 소리까지 들으려고 한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호기심이 많고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을 빗대어 하는 말이지요. 사실 아무것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큰 축복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고, 관찰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테니까요.
- 스태니슬라우스 케네디의《하느님의 우물》중에서 -
* 초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청진기 같은 게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고요한 가운데 마음의 귀, 영혼의 귀가 열리면 잔디가 자라는 소리, 잔디 뿌리가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자기 안에 태고적 고요함을 품으면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엔 삼각대를 둘러메고, 결혼식장에 갔다가... 낮술을 먹고... -_-;;; 지난번 찍었던 포인트에 가보니, 한 분이 혼자 바닥에 앉아 계시다가 바로 비켜주신다... "그쪽에서 대칭이 잘 안 잡힐텐데요?", "잘 보셔야 할텐데?" 하시며, 앉아계시던 자리를 비켜주신다. '디자이너세요?', '아뇨, 사진가에요'.... '뜨끔' ^^;; 아마 덕수궁 근처에 오셨다가, 혼자서 관찰하고 계셨던것 같다... 이날은 덕수궁 벗꽃때문에 야간 개장을 하는 날이라서, 궁 내에 불 빛도 밝혀 놓았다...
임금이 있던 곳이라지만, 서울의 높은 빌딩숲 사이에 조금 초라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보니, 다음엔 각을 아주 낮추어서, 뒤쪽 건물의 꼭대기까지 다 잡아 보는것도 좋겠다. 다음에 다시 시도...
AF-s 17-55로 찍었는데... 역시 야경은 별로다. 50mm 1.4를 가지고 있었는데... 발줌하기 귀잖아서 찍었더니... 플래어도 생기고, 빛갈라짐도 별로다...쩝...
** 쓰다보니 너무 늦어 캠핑카 얘기만 하다 끝나네요... 다음에 추가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이제 절반 가까이 가는듯... 오늘은 캐네디안 록키에서 찍은 사진을 몇장 정리해 볼까? 밴쿠버 체류의 막바지, 6월초? 그때는 학원도 다 때려치고, 근교 스키장도 이미 문을 닫은 시점... 할일 없이 친구들과 밴쿠버를 쏘다니고, 록키산맥의 날씨가 풀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설매 대회에 가볼까? 오로라를 보러 갈까? 하지만, 역시나 개설매는 돈이 많이 들고... 이미 시점을 놓쳤고, 오로라를 보러가자니... 비행기로도 한 참을 가야하는데... 그것 역시 허무할 것 같아... 뭔가 마지막으로 제대로 자연을 느껴보려고, 계획하고 계획하여...록키를 가게 되었다. 호텔은 비싸고, 일주일 이상은 돌아봐야하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캠핑카 랜트였다...
2종 보통의 면허로 그 큰차를 몰수 있을까? 싶었는데... 뭐 울나라에서 주는 국제 면허증이 별다른 구분도 없고, 정말 집채 만한 걸 아무 생각없이 빌려서 타게 되었다. 혼자는 비싸서 감당이 안되서 4명을 생각했는데, 나까지 결국 3명... 역시 일본 애들이 돈이 많은가 보다... 히로시(남), 유까리(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캠핑카를 빌려 10여일의 록키 여행을 떠나게 된다... 말이 10여일이지... 밴쿠버에서 캘거리까지 버스타고 가니깐... 하루는 족히 까먹는 것 같다. 뒤쪽 화장실에서는 연신 마리화나 냄새가 풀풀~~
캘거리에 도착하니 렌트카 업체에서 친절하게 픽업을 나와 주시고... 우린 5인용 캠핑카를 빌리게 된다~ 따라란~ (정말 쉽게 빌렸다... 여기서도 물론 계약금과 보증금 같은 명목으로 캐나다 달라 1000을 카드로 긁어 놓는다... (1천 맞나?) ** 록키에서의 가족여행을 원한다면, 캠핑카 강추한다!!!
좋~ 단다~...
캘거리에서 남쪽 록키로 들어가기 전에는 한 참을 넓은 평야지대를 지나게 된다.
신나게 캠핑카를 몰고 들어선 밴프 국립공원.... -_-; 걍 아무데나 세워도 아름답다.
액자같죠~~??? 위 사진에 있는 장소에서 캠핑카에 들어가서 뒤쪽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후...
가는 곳곳에 캠핑장이 있습니다. 특히 캠핑카관련 시설도 잘 되어 있는 편인데요. 캠핑카가 들어가는 곳 중에는 전기와 수도가 자리마다 붙어 있는 곳이 있는데, 그런 자리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합니다. 전기가 없으면 차량 밧데리를 이용해야해서 아무래도... 좀 불안하죠. 또 한가지... 이곳에 가면, 식수를 차에 보충하고... 차안에 쌓은 '응가'를 버리는 곳이 있습니다. 마냥 쌓놓고 다닐 수도 없고...쩝...-_-;;; 사실 저희는 차에서 차마 응가는 안했습니다. 버리는 것이 곤욕이라서...;;;
그래도 참 멋지고 운치있는 캠핑장소가 많았습니다. 가시게 된다면 꼭 예약하세요... 그것도 성수기라면 더더욱... 아래 사진이 제스퍼 가까운 곳에 있던 아주 큰 차량 캠핑장이었습니다. 멋지쥬~~? ^^? 장작도 피우고, 고기도 구워먹고... 여기저기 사슴인지 뭔지 왔다갔다하고...
후... 아무래도 오늘은 캠핑카 관련 사진만 해 놓고 자야겠네요...;; 역시 회사원에게 이런건...ㅠㅠ;;
하여간 캠핑카가 있으니 무리하게 이동할 필요가 없어지더군요. 가다가 곰이 보이면 세워놓고 구경하고... 좋은 곳 있으면 쉬어가고, 정 피곤하면 세워놓고 자고... (하지만 마구자는건 차내의 식수 고갈과 응가 퇴치의 문제로 자제하셔야 합니다. ㅎㅎ) 운전은 히로시와 번갈아 가면서 하니 또 좋구요. 나중에 들으니 둘이 사귀었다고 하던데...
요건 다른사람이 찍어준 필름사진~...
마지막으로 어딘가 호수에서 만났던 귀여운 다람쥐 사진으로 일단 마쳐 봅니다~ 후~ 가고 시포요~